2001년 연두교서
  현시점에서 교오또교구의 장래를 생각하며 !
        공동선교사목이 목표하고 있는 일
교오또교구 주교 바오로 오오츠까 요시나오



처음에
 교오또교구는, '공동선교사목'이라고하는 교회공동체만들기를 시작으로, 각본당과 교회 전체가, 지금 시대에 걸맞는 복음선교를 하는 교회로 개혁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오또교구의 모든 본당은 57 교회입니다만, 올해 4월 신년도부터, 사제들의 인사이동에 맞춰, 교구내의 모든 본당이 '공동선교사목지구'로서 선언됩니다. 즉, 어느 본당도 단독적 인것이 아닌, 공동선교사목지구의 교회가 됩니다.
 이 전체공동선교사목지구에, 총37명의 공동선교사목 '담당사제'와, 4명의 공동선교사목 '협력사제'가 임명됩니다.
 그리스도탄생 2000년 대성년을 감사하는으로 성스러이 지내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최초의 세기로 발을 내딛어 가며 지금부터의 교오또교구의 장래를 생각해서, 금년의 주교연두교서 에서는 교오또교구가 대응하고 있는 공동선교사목에 대해 토론하고 지금 다시 한번 신자 여러분에게 공동선교사목추진을 위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공동선교사목에 대해서는, 교구로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자 여러분에게 설명해 왔습니다. 교오또교구에서는 1991년부터 최초의 공동선교사목이 시작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9년, 또 그 이전의 준비도 합하면 10년 가까이 '공동선교사목'에 부단한 열의를 보여왔습니다. 교오또교구시보의 기사에서도, 사제나 신자의 연수회에서도, 자주 테마로서 거론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는 드디어 교오또교구의 모든 본당이 공동선교사목이 되고자하는 것으로, 그 의미로 보자면 본격적인 공동선교사목에 대해서 교오또교구의 전체교회, 전신자가 같은 입장, 시점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 니다.
 공동선교사목의 모든 것을 이 한번의 교서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저는 이 교서로, 특히 공동선교사목을 교구전원이 시작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중요한 몇가지의 포인트에 대해서만 적어보고자 합니다.

1. 공동선교사목의 목적

 공동선교사목을 행하는 최대의 목적은, 일본의 가톨릭 교회를, 이전보다도 한층 더 나아 가 본격적으로 '복음선교하는 교회'에로 개혁해 가는 것입니다. 이 크나큰 목적을 위해, 각본당이, 교회공동체 쇄신운동으로서의 공동선교사목의 실천을 통하여, 같은 형태인 '선교형태의 교회공동체' 를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공동선교사목은, 사제의 숫자가 교회의 수보다도 적다하여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소수의 사제가 다수의 본당을 보살필 수 있도록 하는 고육지책이라는 류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확실히, 공동선교사목의 도입에 있어서의 당초의 계기는, 사제의 감소라고 사정도 있었던 것은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9년간 교오또교구에서 실제로 서서히 공동선교 사목을 추진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해 오는 가운데, 사제수의 감소이외에, 공동선교사목에 도전하는, 보다 적극적인 목적과 그를 위한 과제가 보였습니다.
 예를들면, 공동선교사목과 종래의 '하나의 본당 주임 사제제도'를 비교해서, 그 한계를 극복해 가는 일. 공의회 이후의 신자사도직의 실천과 발전을 한층 근본적으로 추진하는 일. 신자의 고령화, 청소년의 부재, 신자수의 감소경향등, 교회자체의 침체를 극복하며 활기를 띄우는 일.
 또한, 복잡하고 다양화한 현대일본사회가 지닌 시대의 복음적인 요구, 예를 들어 일본내 체류중인 외국인의 인도적인 원조나 신자의 사목 서비스의 요구등에 응해가기 위하여, 단독교회에서 전부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을, 가톨릭교회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인식에 입각하여 새로이 '공동선교사목'이, 현대일본의 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 과제에 몰두하며 풀어 나가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적어도 그러한 식별이, 지난 9년간의 공동선교사목의 도전에 의해서, 사제, 신자 안에 서서히 스며들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2. 공동선교사목과 소본당 통폐합의 차이점

 공동선교사목은, 각본당의 통폐합을 준비하기 위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신자들 사이에서 이 점이 먼저 걱정이 되어 공동선교사목을 옳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협력 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선 그 오해를 풀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공동선교사목은, 첫째로 '선교형의 교회'가 되는 것이 목적이므로, 공동선교사목에 의해서, 몇가지의 교회를 통합해서 보다 큰 본당을 만드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리건데, 공동선교사목이 되어서도 각자의 본당의 특색이나 역사, 전통 이 갖는 개성을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내의 활동 (예를들면 미사, 신앙교육, 외국인에 공동체참여등) 이나, 교회 밖에서의 활동, 즉 사회를 향한 활동(복지활동, 정의와 평화에 관한 활동, 자원봉사 활동 등)으로, 혹시 본당들 사이의 방해가 되어서 효과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다면, 서로양보하고 서로의 교회가 공통의 조직이나 합동의 활동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같은 공동선교사목의 추진을 위한 또 다른 이유 및 관점에서 볼 때, 장래 각 본당의 적정한 배치를 위해, 그 과정에서 본당의 통폐합이 부득이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도 솔직히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3. 공동선교사목은 신앙개혁

 그러면, 선교형의 교회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왜 종래의 하나의 작은 본당 주임사제 제도로는 안된다는 것일까요? 어째서 지금, 공동선교사목을 행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여기에서 공동선교사목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공동선교사목이 근본적으로 '신앙개혁'이라고 하는 점을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 일본교회의 정체나 막힘 에 관하는, 실은 우리들 신자의 '신앙관'의 개혁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선교사목의 목적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함 입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엄격 하게 말해서 신앙의 공동화, 유명무실화와 표리일체입니다. 신앙이란, 신자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이미지가 깊은 곳에서 교회의 정체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관은 신앙관 위에서 성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오또교회 전체가 하나가 되어 걸어가고자 하는데에 가장 근본적인 박다름의 원인은 서로의 신앙관의 확인부족과 신앙에 대한 무의식의 불관용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에 '나의 신앙'을 어떻게 지내는 가 하는 신앙교육이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외에 구원은 없다'라고하는 생각 으로 교회 를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상적인 신앙생활과 죄많은 사회생활이 라고 하듯이 이원론적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원래 신앙에 대해서 '나의 신앙을 지킨다'라거나, 교회에 대해서는 '나의 교회'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신앙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은 우선 가톨릭교회가 지켜온 신앙내용을 나타내며, 교회란, 신앙교육을 전달하며, 신의 무상의 은혜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뜻의 움직임에 의해 받아 들인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교회의 신앙내용은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진 신앙내용과 같습니다. 신의 계시라고 하는 신의 이니시아티브에 의한 모든 피조물의 구원이라 하는 위대한 계획은, 예수의 생애 와 그 죽음과 부활에 의해 실현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증명한 '하느님의 나라의 복음' 속에 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을 깨닫고, 예수님의 삶에서 보여진 '죽음과 부활' 이라고 하는 사건을 통해, 그 사건이 자기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여 전세계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구원의 내용 자체를 메시지로 한 '예수님에 의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신앙내용으로서 존재하는 교회 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사회와 인간에게 신앙내용이 보다 전달되기 쉽도록 연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신앙을 전달하고저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때야말로, 그 존재이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근본적으로 선교를 해야 하는 것입 니다. 그외에도, 신앙을 지닌 자들도 교회도 한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신앙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것을 사회에 전파라려는 때, 나의 신앙은 '공동체성'을 가진 '우리들의 신앙'으로 바뀌어, 개인의 신앙도 '사회적인 신앙'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은, 신앙과 교회의 쇄신이라고 하는 작업안에서 서로간에 언제나 확신하고 싶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4. 공동선교사목이란 무엇입니까?

 다음으로, 실제로 공동선교사목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해보려 합니다. 명칭에 '공동'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넓은 의미로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구성원끼리가 공동으로 교회를 운영합니다. 이 '공동성'은, 교회활동의 모든 차원에 있어서 실천됩니다.
 우선 각본당의 공동선교사목을 위해서, 사제가 서로 팀워크를 짜서 해나가는 것이 첫 번 쨰의 출발점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본당에 한사람의 주임사제 (때로는 몇분의 조임 사제가 보조)가 임명되었습니다. 거기서는 한사람의 사제가 교회활동의 전반을 도맡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공동선교사목에서는, 여러분의 사제가 팀을 만들어, 교회의 활동을 팀으로서 '사제의 입장'으로부터 지도하기 위해서, 우선 자신들의 역활과 책임을 분담합니 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사목자로서의 봉사를 다하기 위해, 사제들은 개인행동이 아닌, 팀 활동에 매진합니다. 이렇게해서 사제 개개인이 행하는 지도의 물리적 및 능력적 한계를 보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하여 사제는 공동선교사목지구의 공동체 안에서, 신자, 수도자와 함께, 선교사목을 행합니다. 거기에는, 공동체의 핵심이 되는 팀의 회의에서, 공동선교사목에서의 기본방침 이나 구체적인 사목계획와 추진방향에 대해서 기획을 세웁니다. 그위에 팀이 제안하는 일 을 각본당의 공동체의 보다 많은 팀원과 협의, 그 교회공동체 전체의 결정을 산출해 냅니 다. 그리고, 결정된 일을 모두에게 실행하며, 그 활동을 다 함께 공동으로 평가합니다. 이와 같이, 각자의 본당 안의 활동이라 해도, 각각의 본당끼리 서로 모여 합하고,또 합동으로서 선교사목활동일지라도 항상 다양한 식별을 매개로 한 프로세스가, 공동선교 사목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됩니다.

5. 공동선교사목의 영성

 따라서, 공동선교사목의 이해를 위해서 기본이 되는 것, '공동성'의 의미입니다. 모든 단위의 교회공동체(사제팀, 본당팀, 지구, 교구전체) 가 그 고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스스로 운영, 활동을 결정, 실행, 평가해 가는 때에, 늘 구성원 전체의 '식별 '을 가지고 실행되어진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공동선교사목의 '공동성' 으로부터 오는, 공동선교사목의 기본정신, '공동선교사목의 영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컨데, 공동선교사목이란, '합동으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공동으로 무언가를 위한 식별을 하고, 그 후, 공동으로 가능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실제로 기획, 실행하는 일이고, 단순히 합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은, 공동선교사목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합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의 동기의 의의는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합동으로 묵상회를 한다거나, 합동으로 어린이 캠프를 한다거나, 그것은,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동일한 일을 하는 때의 손실을 줄이며, 합동으로 보다 큰 규모로 하면, 쓸모없는 것이 없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효과적인 의식있는 활동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동 선교사목이기 때문이야 말로, 용이하게 실행할 수 있지만, 공동선교사목이 최종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공동선교사목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때, 사제, 신자, 수도자가 함께 본당간의 교류를 깊게 하며, 합동활동을 통해서 사목선교를 행하는 가운데 목표하고 있는 것은, 종래의 교회 활동전반에 보여지는 '사제주도, 신자의존적인 의식'을 바꿔가는 일, 그리고, 그와 같은 종래의 체제에서의 선교방법을 다시 따져보고, 본래교회가 추진해야 하는 선교의 사명을, 현대사회의 문제에 맞춰, 그 지역의 복음선교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 입니다.

6. 종래의 사목형의 교회와 주임사제 제도의 한계

 이 '공동성'을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 잠깐 공동선교사목과 종래의 '주임사제제도'의 차이를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본당이라고하면, '주임사제'라고 하는 타이틀로 주교로부터 하나의 본당에 임명된 한사람의 사제가, 문자그대로 주교님을 대신하여 그 교회를 직접 감독지도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실제로 그 사제개인이 교회의 활동 전반에 걸쳐 결정, 책임을 지는 체제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교회가 운영되어 왔습니다.
 이 경우, 교회가 일체화한다라는 점에서 보자면, 일반적으로 '사목형'이라고 불리워지는 교회의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는, 그 주임사제제도에서 충분했을지도 모르 겠습니다. 신자는 사제로부터 영적인 보살핌을 받는 말 그대로 수동적 신앙생활로, 반대로 사제는 주로 미사를 집행하며, 구도자의 교리, 성서의 연구회의 지도, 개인적 생활의 고민 이나 상당을 해 주는 것으로 사제의 역할을 다하는, 그런 식으로 사제와 신자의 관계가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재정이나 교회의 공식적 활동이나 행사도, 사제 홀로는 불가능하면 서도 결정에 있어서 주임사제 개인 결정이 압도적이었기에 신자는 그 결정에 따라서 행동 하는 수동적 자세였습니다.
 또한 선교라고하는 관점부터는, 구도자에게 세례 받는다는 포교활동 영역을 넘어서지 않고, '사회 그 자체를 복음화한다'라고 하는 관점에는, 공의회 후에도 당분간 성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곤란한 것도 발생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주임사제가 타교구로 전임하는 경우, 그 교회의 방침이(다음의 주교의 방법에 의해) 확 바뀌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 해 신자는 당황하게 되어, 그곳에 늘 살고 있는 신자들이 주체적으로 교회의 운영이나 선교방침을 가지지 않고, 열의는 있다하여도 교회 활동에 있어 결국은 한 사제의 뜻에 따라 단발적인 시도로 끝나버려, 일관적인 활동이 불가능 했습니다.

7. 제2바티칸 공의회이후의 교회의 발자취로부터

 제2바티칸공의회 이후, 종래의 본당제도의 아래에서도 확실하게, '신자의 자립'과 '성직자 (사제)와 신자와의 협력'을 양립시키는 공동체에의 의지는 싹터 왔습니다. 그러나, 복음 선교하는 활기넘치는 교회의 도전적 자세가 좀처럼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세계에 열려 진 교회에의 쇄신'이라고 제창되어진 공의회의 가르침은 교회자신에게, 인간으로 말하자면 머리를 바꿔 버리는 길을 제시하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실제 행동 으로 옮기는 몸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공동선교사목은, 그 구태의연한 교회 의 본질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대감각입니다. 인류도 일본사회도 격동의 20세기를 지난 오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시대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본에서, 종래의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는, 미래가 불투명한 느낌이 존재하는 현대, 가톨릭 교회도 시대의 변환을 통감하기 때문에야 말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에 따라, 과거의 잘못과 불 신앙을 반성, 새로운 천년기에 걸맞는 교회로 다시 태어나려 하는 계기로서 대성년을 맞이, 그 준비를 하고, 보내야 할 것입니다.

8. 공동선교사목과 교회의 정체성

 그리고 그 반성은, 교회가 본래 그리스도로부터 위탁받은 구원의 사명의 의미를, 새로이 생각하게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안에서, 교회는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재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택과 파견의 신학'에 근본한 '구제사적 정체적 (아이덴티티)' 의 발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구원을 전체안에서 선택하신 대표자인 소수자에게 봉사시키시면서 수행 해가는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그 대표자의 근원이라하면, 바로 예수님이요, 이스라엘의 백성이 앞서, 신약의 교회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일본의 교회는, 사회안에서 소수파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는 특수 사정이 라고 단정지지 말고, '선택되어진 봉사자'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현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선교환경으로서 일본의 교회에 주어진 독자적인 소명과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 다. 그리고 우리들이, 오늘날 전세계와 일본의 비복음적인 현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 봉사자'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공동선교사목의 시도는, '어째서 우리들은 (신자수가 적은 일본에서)가톨릭 신자인것일까, 교회와의 일체화란 무엇일까, 교회건물이 있어 신자가 모이는 것 이상으로 일본에서의 작은 공동체가 해야 마땅한 일은 무엇일까'라고 하는 간단한 질문을, 쓸데없이 초조해 한다거나 한탄하지 말고, 옳바른 관점으로서 끌어내는 지혜와, 거기에 답하려 하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9. 일본 교회의 자립의 기회

 공동선교사목의 선택의 근본에는, 일본교회의 '자립해야할 시대'의 도래라고 하는 판단이 있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에서는 신자수의 감소나 신자의 고령화에 의해, 교회를 지탱해 주는 체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전후, 외국으로부터의 수도회 선교사 분들에 의해서 경제적으로도 인재적으로 지속해 온 일본의 교회는, 모든 점에서 자립하도록 요구되어지고 있습니다.
 공동선교사목이 목표하는 바를 확실히 파악하고 나아가므로, 사제의 수가 설사 증가해도 공동선교사목은 멈추지 않고, 갖가지의 실패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에 따른 뼈아픈 고통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나 아픔을 새로운 깨달음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동선교사목은, 그것이 단지 원할하게 진행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조바심 을 내지 않습니다만, 이정도면 하고 안주해 버리는 위험한 일도 주의해야 합니다.
 확실히, 공동선교사목을 추진해 가기 위해서는, 과제는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공동선교사목의 신학적 연구, 신자사도직의 새로운 발전, 신자의 자립, 교회공동체에 있어 서의 신자와 사제의 역할 구축, 사제의 참 리더쉽, 봉사자와 공동체의 관계, 인간단체의 보다 질 높은 식별방법의 개발등입니다.

10. 교오또교구의 비젼을 한층 더 추진해 나가기 위해 교구민으로서 의식을 가지고

 교오또교구는 복음을 생생하게 지키고, 전파해 가기 위해서, 선교형 교회공동체가 되어 공동선교사목을 추진하는 방법을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서, 선택해 갔습니다. 그것은 1981 년 11월에 발포된 교오또교구비젼 '사회와 함께 걸어가는 교회'를 재확인한 위에 보다 더 굳게 하기 위해 선택된 일이요, 현대 사회와 교회 그리고 신앙인을 잘 인식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선택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행착오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선교사목을 추진하기 위해서, 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교구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공동선교사목에 열의를 띄어 주십시오. 우리들은 자신이 소속된 본당이, 어떤 어느곳의 단체인가를 잘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본당의 지역명에는 가톨릭이라고 하는 단어가 붙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교회인 가톨릭 교회가 지키고 유지하는 신앙내용과 임무를 지역교회인 교오또 교구공동체 역시 가지고, 이 지역에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라고 하는 '의지표시'라고 생각 합니다.
 다시 반복해 말하자면 교회의 존재의식은 신앙을 전달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일러주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오늘날 지방교회인 교오또교구의 지역에, 보다 잘 전달 하기 위해서, 자신의 본당만을 위해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조직이 본래 가진 모습을 필요에 응해서 변화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래의 조직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 개선해야 할 부분은 개선하려는 용기를 신앙인으로서 가지는 것입 니다. 공동선교사목에의 열의는, 교구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장래의 교오또교구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신앙을 전달해 가는 복음선교를 멈추지 않는 여행하는 교회의, 차기 밀레 니엄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점은 참으로 얼마 안됩니다만, 종래의 조직이란 틀과 변하지 않는 이성적 사고를 조금씩 바꿔어 갑시다. 미래란 기다리면 자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부터 존재하던 것을 잘 파악한 후에 계속 고쳐나가며, 자기자신이 한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교구민으로서, 어떻게 예수님의 복음으로 살아가면 좋은 것인가 하고 반성에 의한 자기 쇄신을 계속하고 신앙에 의한 응답을 이어가는 것은 대성년이 끝나도, 생애 지속 될 그리스도신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교오또교구의 최우선 과제인 공동선교사목에 열심으로 활동하면서, 3번째의 밀레니엄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성모마리아님께서 전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올 한 해 우리들의 발자취 위에,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충만한 은혜와 성령의 빛이 비추어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교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보내드립니다. 같이 나아갑시다 하느님의 평화의 집으로

2001년 성모 마리아의 축일

(교오또교구시보 2001년 1월 1일 278호에 개제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