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연두교서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

교오또교구주교 바오로 오오츠까 요시나오


1. 신앙공동체를 체험합시다.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 여러분과 함께, 교오또교구의 공동선교사목을 힘차 게 추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은, 복음선교하는 동료인 '신앙공동체'에 대해서 생각, 체험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어린이 신앙교육'을 테마로, '공동체 '로서 신앙을 차세대에 전하는 사명을 재확인했습니다. 이 부름에 많은 신자 여러분이 응해주시었습니다. 올해부터 다시 새로이 교구전체에서, 어린이들에게 신앙전달의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해 봅시다.

2. 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

작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제위 25년을 맞이하시어,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사명에 생명을 걸어 내디 셨습니다. 교황님은, 회칙 '교회에 생명을 안겨주는 성체'라고 발포(2003년 4월 17일)하시고, 교회를 살리고 육성하는 성체(에우카리스티아)의 신비와 존엄성에 대해서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성체에 둘러 싸인 우리들 스스로의 신앙생활과 신앙체험을 서로 나누며, 제3천년기의 복음선교에 '노를 저어가는' 그리스도 신자가 성체의 신비를 끊임없이 느끼며, 그 신비의 놀라움을 깊게 해 미사의 의미를 되새기 면서 미사를 소중하게 되살리도록 부르시고 계십니다.

21세기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모색하는 중, 공동선교사목을 추진해서 '복음선교 하는 공동체'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나긴 여정이 필요합니다만, 미사야말로 그리스도 를 둘러싸고 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를 키우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미사야말로, 교회와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생명이요, 미사가 현실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살리는 활력원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혹시, 자신이 미사드리는 법이나 각본당에서의 구체적인 미사 집전법에 문제가 있어, 그 결과 개인도 공동체도 미사로부터 생활의 원기를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영적인 기아상태를 채워주는 것을 미사 이외의 부분에서 얻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미사나 전례에 대한 생각이나 서로의 교류의 대해서 직접적 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교오또교구는,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 라고 하는 테마로,우리들이행하는 본당의 주일 미사가, 진실' 신앙공동체의 체험'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3.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

그리스도는, 일상이라고 하는 현실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두가지의 일을 요청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코8.34) 와 '나도 너희을 보낸다' (요한20.21) 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돌아가심과 부활의 기적적인 재현인 동시에, 그리스도 와의 만남 의 장소 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파악이 가능한 모습이 되어, 전 세계에 전달하는 근원의 장소인 것입니다. 미사중에서 기념되어지는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봉사하는 삶은, 제자인 우리들의 모범입니다. 우리들은 미사에서 '말씀'을 통해서,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체에 의해 그리스도안에 하나가 된 우리들이 신앙공동체로서, 우리가 사는 사회를 하느님의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하기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북돋아지어, 다시 '일상' 을 향해 파견 되어집니다.

그리스도는 '구세주' '우리를 위안해주시는 주'인 성령을 보내, 우리들의 '일상'속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이렇게 해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어떠한 시대나 장소에 살아 가는 사람들, 모든 피조물을 구원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상' 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미사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미사에 의해 예수님의 사시는 법을 배우고, 영혼의 이끌림에 따라서 일상생활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세례에 의해서, 또한 건실한 믿음에 의해서, 구원의 근원이시자 아버지 이신 하느님께 그리스도의 협력자로서 초대되어진 우리는, 미사의 영적선물로부터 힘을 얻어내, 그리스도와 함께 '일상'에 보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미사가 우리들 생활 에 깊게 연결된 것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진지하게 미사를 드려야 합니다.

4. 예수의 최후만찬에 유래되는 구원의 확신인 미사

하느님은 구약의 민중에게 '노예상태' 에서의 '해방의 징표' 로서 안식일을 정하셨 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대, 하느님의 '해방의 징표'인 안식일에 대해서, 유대교 사회의 지도자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 으로 구성된 사회를 형성, 안식일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나 병자들, 그리고 죄수, 이방인들은 구원의 대상으로서 제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의 나라의 복음선교활동을 통해, 그와 같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제외된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양식을 함께 하시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사람들에게 몸소 보여주셨 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아가심의 의미와 목적을, 수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전 최후의 만찬에서 보다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에서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고, 그것들이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봉헌의 상징인 당신의 '육체와 피'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흔들림없는 구원에의 확신을 승계하여, 최후의 만찬을 계승하는'감사의 제사'를 주님의날 (주일) 마다 드림으로해서, 모든 이들이 하느님께 구원되어지는 ! 그 순간 확신으로부터 보다 깊게, 보다 새로이,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으로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5. 교회의 발자취로서의 미사

이와 같이 예수님이 제정하시어, 교회가 행하는 미사는, 수난과 부활로 죄와 악을 이기게 하는 '최고의 자유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미사를 단지 의무라던가 의식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뿐 아니라, 미사에 익숙해져, 미사를 쉽고 간단히 생각해 버려, 신앙 그자체가 생활의 부속품적인 존재로 치부 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이 이와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개개인의 신앙생활의 반성 과는 별도로, 2000년에 걸친 교회와 미사의 역사를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시 되어진 주의 식탁의 기념인 미사는, 그리스도교가 국가 (로마제국) 의 종교가 되어감에 따라서, 미사에 대한 이해 나 봉헌하는 법이 크게 변화되어 갔습니다. 박해시대를 벗어나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대가 되자, 세례나 강한 믿음, 결혼등의 의식은 교회의 의식과 동시에 사회 제도에 포함되어지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대규모인 교회가 다수 건설, 성당 내의 수많은 제단이 설치되면서, 공동체로서의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 측면은 희미해지고, 개인의 의향을 행하는 미사가 증가했습니다. 또한 모처럼의 성체를 대하는 의식는, 생활의 시점으로부터 불리되어진 개인의 신심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미사의 본질은 변화되어 있지않다해도 예수님이 명하신 최후의 만찬 을 공동체로서 계승한다는 신앙표현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가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현상가운데 일부의 형제들이 가톨릭교회를 떠나, 다른 그룹을 만든 일은 역사의 사실로서 감추지 말고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근대이후, 전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 하느님이 모든 근본원리인 시대로 부터 인간의 이성에 의해 모든 것이 판단되는 시대가 되어 왔습니다. 인간은 자율적인 이성에 의해 전세계 안에 모든 사상을 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 하느님은 이미 '종교 라고 하는 분야'에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 되어 왔습니다.

6. 도전으로서의 선교적생활을 지탱하는 미사

우리들 현대인의 생활은,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의 사이에 있어, 또다시 구약의 어딘가 의 노예상태에 있는 민중에 닮아 온것은 아닐런지요. 하느님을 소홀히 하는 이 세속적 상황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잃어가는 오늘날. 그리고 우리들 현대 그리스도인은, 경제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손에 넣은 후에라던가, 혹은 무언가 곤란한 때에만, '신의 힘'이라던가 '은총'을 바라는 신앙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요? 진정한 의미로, 주일미사 에 참가한다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의 사는 법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자기자신을 위해 미사에 참석하는 것인가, 혹은 그리스도께서 바라는 사회실현을 바라 고 미사에 참가하는 것인가하는, 미사의 목적의식을 개선하는데 직결됩니다. 혹시, 미사에 의해 우리들의 생활이 바뀌어 있지 않다고 하면,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미사는 지극히 일반적인 의무도, 의식도, 단순히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미사를 드릴때,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번주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되새 겨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가톨릭 교회안에서 우리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힘을 얻어낼 수 없는 것은, 그리고, 그와 같은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활기찬 모습으로 젊은 세대의 사람 들에게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신앙을 어떤 형태로 결론을 내려, 생활 과 구별 해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생활에 쫒기는 현대인에게 인생에서 하느님 의 사랑 이야말로 생명의 기둥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힘을 주는 사명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들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생활이 각박한 현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선교생활에는, 당연 큰 용기와 희생이 동반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구세주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미사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하느님의 바램에 완전하게 응하고 있지 않는 죄인임을 자각하게 해 줊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고 하는 자각없이, 하느님자신과 또한 하느님 을 믿는 형제자매 서로가 만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미사의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가 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중심적인 신앙관을 탈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7. '일상'에 재림 (모습을 드러내시는) 해 오는 신앙을 키우는 미사

따라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활동에 참가하는 일은, 우선 미사에 참가하는 일입니다. 미사에 예수님의 선교활동과 십자가의 희생을 지금 시대에 재현하는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한사람한사람의 회개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희생되신 것은, 인간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가치관을 근본으로 한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일상' 안에서, 영적성장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사는 '일상'에 재림합니다. 그것은 신자가, '모든 일, 기도, 사도적노력, 결혼및 가정생활, 하루하루의 노동, 심신의 휴양등은, 영에 의해 행하며, 또한 생활의 번거로움을 인내심으로 버티어 낸다고 한다 면, 그것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기뻐하실 영적제물이 되어, 성찬 전례에 의해, 주의 몸이 되고, 주 하느님 아버지께 경건하게 올려' (교회헌장34) 지기 때문인 겁니다.

미사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신앙과 생활을 통합하는 장이 됩니다. 더우기 미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에 맞설수 있는 힘을 줊니다. 미사로 경축하는 '하느님 의 사랑'을 최우선하는 가치관에는, 비복음적인 사회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힘이 있습 니다. 미사에는 우리들자신과 우리들의 사회를 바꾸는 커다란 원동력이 잠재되어 있습 니다. 때문에 미사는, 복음선교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8. 복음 선교에의 '근본결단'을 갱신하는 미사

하지만, 미사가 참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 자신의 '사회적회개'가 필요합니다. 그 회개의 과정의 시작은, 자신의 생활 안에서도 교회공동체의 안에서도 존재하는, 비복음적인 사회구조로부터 오는 억압과 부정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도 공동체도, 이 사회의 구조악에 대해 무력함을 인정, 받아들이는 일입 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사회구조의 피해자임을 깨달으며, 동시에 그 구조 자체가 자신의 이기주의나 교회공동체의 무질서한 애정의 결핍이라는 가해자적인 반성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은 미사중에, 비복음적인 인간사회에 도전하는 예수님에게 한층 더 확실히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근본결단은,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부터 모든 부자유와 억압, 차별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그리스도의 근본결단을 자기의 근본결단으로서 선택하고 있습니다. 미사의 성서낭독에 있어서, 주의 말씀을 오늘날 자신의 살아가는 법과 사회생활에 적용해 듣고, 살아있는 하느님의 목소리, 하느님의 바램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미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결의를 새로이 하는 장소가 됩니다. 즉, 복음선교를 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근본결단을, 미사를 통해 언제나 새로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으로부터 미사로 산다' 라고 하는 목표에 매진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는, 한사람 한사람의 근본결의가 생활전체에 어느정도 스며들어 있는가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9.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미사

'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 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약한자'와의 연대를 목표로 소박한 삶을 구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박한 삶은, 서로가 함께 나누는 삶 입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이요, 미사 그 자체라고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미사안에서, 모든 사람들, 세상의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신비한 육체로서 하느님에게 이끌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21세기의 미사로, 사회의 구조악으로부터의 해방의 외침과, 사회 분열의 회복을 점차 강하게 일에 의해서, 교회는 한층 사회에 봉사하는 존재가 됨이 가능 합니다. 미사 그 자체가, 복음선교와 정의의 촉진의 장이 되어, 신자가 성체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의식이 되면 될수록, 교회는 세상에 봉사하는 모습으로 한층더 변화 해 갈 것입니다.

10. 깊은 교류를 체현하는 미사

미사에 최초로 참가한 사람은, 지금의 우리들의 미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미사를 일정 규율에 따르는 '엄격한' 의식이라는 인상을 받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낭독의 수단, 공동으로 드리는 기도, 평화를 기리는 수단, 미사전후에 관계에서, 서로를 소중히 하는 활기찬 교류의 장이라는 인상을 받을까요. 혹시, 우리들의 미사안에 흔히 보여 지지 않는 인간간의 깊은 마음의 교류를 발견하고 감탄한다면, 미사가, 우리들이 자유 롭게 되고, 구원 되어져, 그 생명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장소라고 생각 되어지겠지요. 미사는 본래, 깊은 마음의 교류가 가능한 장소입니다. 그럼, 각본당의 미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층은,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걸까요. 빈곤한 자, 장애를 가진 자, 재일외국인, 어린이, 청년, 병든자, 고령자,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가하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사람들, 처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저항없이 참가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는지요. 덧붙여, 우리들이 다행히도 주일의 미사에 참가, 마음의 기아와 빈곤함을 채워주는 영적 식량인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일이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성체의 힘에 의해, 기아와 빈곤함에 괴로워하고 있는 형제자매를 새로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이 미사에서 체험한 깊은 관계를 일상생활안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 차별받고 있는 자, 병든 자, 가치관이 다른자들간의 사이에서 넓어져감으로, 그리스도를 모든 이들 사이에서 받아들이는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 가능할 것입 니다.

11. 성모 마리아와 함께 미사의 은총을 구하자.

성모마리아는 전생애를 통해 '성체안에서 살아오신 여성'이었습니다.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셨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성모마리아를 모범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체에 있어 완전한 방법으로 예수님과 그 희생에 연결되어져, 마리아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습 니다. 올해 '일상에서 미사로 산다'라는 일을 결의한 우리들은, 우선 성모마리아와 함께, 자신의 생활을 고쳐나가며, 미사와 생활을 통합하고자 하는 마음과 은총을 진지하게 기도로서 청합시다.

각자의 본당에서의 주일미사는, 무엇보다도 그 신앙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장소이자, 또한 본당이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는, 그 '일치의 의식'을 축하드리기 위해서 이뤄져 있습니다. (사도적서간 '주일-일요일의 중요성 n36) 교회가 감사의 제사를 행할 때, 언제나 마리아는 그곳에 계셔 주십니다. 성모마리아와 함께 드리는 기도로, 우리들 안에서 일치의 은총을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올해도 미사중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계속해 나갑시다. 중동평화나 이라크 부흥이 이뤄져, 세계의 모든 분쟁이 해결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 록.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의 군주'이신 예수님께 결합되어 , '모두가 하나가 되어'.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과 연대 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이 우리들의 일상에 있어 서, 모든 것을 통하여 전부 이루어 질 때까지 기도합시다.

2004년 1월 1일


하느님의 어머니 성 마리아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