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주교연두교서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 제2부

      –그리스도와의 가까운 만남에 초대되어–


        교오또주교 바오로 오오쯔까 요시나오


첫머리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복음선교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루가5,4) 나아갑시다. 우리들은 작년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를 테마로 공동선교 사목 추진을 위한 제1의 기초인 미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대해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이「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를 테마로 하려고 생각합니다. 도움주는 테마는「그리스도와의 친숙한 만남에 초대되어서 」( 1고린토1,9)로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성체)주1의 신비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와의 친숙한 만남에 참여하고 있는 은혜를「일상」에 있어서 살기위함입니다.

1.「성체의 해」 에 즈음하여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새 천년기의 제 1의 회칙「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를 반포해서 새로운 복음선교에「그 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그리스도인이 성체의 신비를 끊임없이 새로이 느끼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올해 카톨릭 교회는 교황님에 의해 제정된 「성체의 특별한 해」를 걷고 있습니다. 이 「성체의 해」는 작년10월 (10일부터17일)에 멕시코・과다라하라에서「신세기의 빛과 생명인 성체」를 테마로 행해진「제 48회 국제성체대회」에서 개막하고 금년 10월

2일부터 29일까지「성체의 신비 –교회의 생명과 선교의 원천과 정점」이라는 테마의 것과 바티칸에서 개최되는 「시노드(세계주교 대표자회의)」에서 끝납니다. 우리 교오또 교구도 「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를 테마의 의해「성체의 해」를 유익하게 지내려 고 합니다. 금년의 각 본당, 블록(구역)지구 협의회에 있어서 「성체의 해」에 어울리는 활동을 실행 해 주십시오. 또 블록(구역)방문을 행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생각합시다.

2.「성사」와 「일상」

「성사」는 신앙생활의 도움일지라도 그 대신은 아닙니다.「일상에서부터 미사로 산다」의「일상에서」란 우리들이 신앙을 사는 일상생활의 자리에서 성사에 가까이 하는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의 전례행위는 영적,정신적인 단련과 고행을 강조하는「행」은 아닙니다. 전례에 있어서 성사를 행하는 의미는 「부활한 그리스도 와의 만남」에 있어서 일어나는 내적변화를 낳기 위함입니다. 성체성사의 전례인 미사 에 갖는 행위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성사」란 즉「일상의 우리들」과「그리스도의 유월절의 신비」의 중간의 있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2000년전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에 시공을 초월하여 언급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주 예수 자신이「이것을 나의 기념으로 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시고 왜 성체를 제정하셨는 가의 의미를 알겠습니다. 우리들 인간측에서는 그리스도의 유월절의 신비에 유효하게 접근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그 방법을 생각해 내 주는 것입니다.「받아먹어라」라는 초대가 우리들 눈 앞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성사」 에 있어서 구체적인 심볼을 개입시켜 그리스도의 신비에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구세주 그리스도와 만나는」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미사에 있어서는 「빵과 포도주」 라는 심볼을 사용합니다. 성체성사도 포함해서 일곱 가지 성사에 있어서의 심볼의 의미를 더욱 더 알고 이해를 깊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3.성체 3가지의 차원

그리스도의 「희생물」・「현존」・「만남」


우리들은 성별된 「빵과 포도주」를 앞에 두고 신앙에 있어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라고 고백합니다. 성체의 이해는 신앙에 고유한것이고 직관한 것이고 그것을 배령 할 때 바로 주어 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봉헌하신 주님은 우리들과의 만남 과 일치속에서 자신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서간을 두고 저는 성체의 신비인 그리스도의 「희생물」과 「현존」과 「만남」의 세가지(참조 「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 N61)에 대해 고찰하고 「일상에 서부터 미사로 산다」 제2부의 도움주는 테마인 「그리스도와의 가까운 만남에 초대 되어」를 묵상하고 싶습니다. 이것 세가지의 차원은 성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주요한 개념이고 그것은 또 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가지는 각 각 「사랑하는(봉사 하는)교회」「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아가는 교회」「만남으로 향하는 교회」로 라고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4.미사성제는 「제물」에 의한 만남

①그리스도의 「속죄」로서 「재물」

교회는 미사성재를 행하고 「그리스도의 유월절」을 축하합니다. 성체는 「그리스도의 유월절」의 기념이고 그리스도 유일의 [제물]의 성사적인 봉헌입니다. 「먹을 수 있는」 빵과 「마실수 있는」 포도주는 그것 자체가 자기자신을 완전히 바쳐 버린 헌신한 그리스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이 「제물」을 모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바쳤습니다. 교회는 이 「속죄」의「제물」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내 몸」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라고 명언하시고 확실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고 계십니다.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내 기념으로 행 하여라」 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단지 기념으로서 이 식사를 되풀이 하는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을 내어 놓은 봉헌, 이것을 너희들이 항상 새로이 행하여라 그것이 내 기념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체는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속죄」의 업을 현재화하여 기념하고 그 결실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만남을 낳는 사랑의 「제물」인 것입니다.

②교회의 영적인 사랑의 「제물」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의 역활은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받고 있다」 성자로서 존재하는 이외 그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헌신은「사랑」이며 그것도 받아들인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헌신이였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은 모든것을 받아들인 성자에 의해 영광을 받으신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영광이란 자신을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그리스도를 「받으면서」바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마나는것, 그것은 또 그리스도인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는 교회의 「제물」인것입니다. 교회는 단지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에 의해서만이 받을 수 없는 것 입니다.그러므로 바오로는 말씀하십니다.「자신을 하느님 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로마12,1)라고 그러면 교회와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생활 (찬미, 고통, 기도, 노동)과 신앙과 봉사는 그리스도 가 드리는 미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전례」보다는 먼저 「생활」그 자체가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③[사랑하는(봉사하는)교회]

성체의 「제물」의 고찰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좋은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얻음에 의해 형제자매에게 봉사하는 「사랑하는 (봉사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을 가르킵니다. 우리들은 먼저 한 식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성체적인 공동체는 누구라도 공동체에 의해 도와줄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공동선교사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교회공동체가 영적인 「제물」을 바쳐 형제자매를 서로의 봉사에 의해 사랑하는 공동체로 가까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5.미사성제는 이 세상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현존」의 축하 행사

①자신을 「주는」「 현존」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기쁨」이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1데살로니카4,17)입니다. 미사에 있어서 예수의 「제물」은 다만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제의 「성령의 움직임을 구하는기도」(에피 크라데스)와 성별의 말씀에 의해 「빵과 포도주」의 형태에 부활의 예수가 현존합니다. 이 「현존」은 거기에 가만히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준다」는 다이너믹한 영위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죽음에 의해 현존하고 부활에 의해 우리들을 향해 현존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요한 20,20)는 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상처를 입은 영광의 예수를 봤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가 내 곁에 와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사랑과 용서의 눈길을 돌려주시고 나를 받아 들여주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6,56)라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성체의 현존은 자기자신을 바쳐 서로 받아들이는 현존의 방법입니다

②부활하신 주를 맞이하는 준비

제자들은 「기쁨과 진심을 가지고 」(사도2,46)빵을 나누어 부활하신 주와 생생한 만남속에 주를 맞이하는 것에 의해 성체를 축복했습니다. 우리가 제단위에 준비해서 성령의 움직임에 의해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빵과 포도주」안에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있어서 「교회와 만나기」위해 부활하신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주의 부활이란 「재림」즉 주의 도래와 현존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체에의 신앙은 부활한 주가 그 공동체에 현존해 있다는 확신에 의해 키워져 왔습니다. 이 확신은 저절로 성체에 있어서 우리의 곁으로 오시는 주를 맞이 하는 준비를 시켰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1고린토11,28) 회심입니다.

③「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사는 교회」

그리스도의 「현존」에 있어서 「만남」은 「주의 도래」와 회심하는 우리들의 「영접」의 상호성속에 축복받습니다. 그 위에 교회자체가 이 세상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미사가 공동체의 형제적인 식사임을 인정해도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어서의 외에 형제적인 식사는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자기자신안에 틀어박혀 있을때 성사는 아직 불안전한 상호성의 장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들만으로는 사랑의 빵 씨앗은 못됩니다. 교회의 행하는 사도직과 모든 활동, 또 우리들이 대처하고 있는 「공동선교사목」에 있어서도 주의 현존을 가치없게 하고 있는 활동이라면 그것은「그리스도 부재」인 것입니다. 성체에 있어서 그리스도「현존」의 고찰은 우리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성령에의해 사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④가난함 사람들속에 예수의 현존

성체배령을 하고 우리는 그대로 성체의 성궤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져 먹어라」 라는 초대에 응한 우리들 자신이 「일상에서 미사와 함께 산다」은 것에 의해 주의 현존의 심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제단 앞에서 받아서 모시는 성체에의 신앙선언은 실제 「일상」에 있어서 어떻게 싱앙을 증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하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바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기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 형제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안에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 예수는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가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 작은 사람들」을 동일시 하십니다. (마태25,35)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안에 계신「그리스도현존의 상징 제정」을 의미합니다.「가난한 사람들안의 그리스도의 현존」과 성체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란 불가분한 것입니다.

6.만남의 성사인 에우카리스티아(성체)

①회식에 의한 만남・코무니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제물」의 「만남」에 참여하도록 말씀하십니 다. (1고린토11,23~26)이 제물에 참여하는 것 즉「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코무니오」입니다. 일본어로는 이것을「성체배려」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의 일부분의 동작을 연성시킵니다만, 「코무니오」는 성체가 초래하는 가장 깊은 차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적「코무니오」(만남) 이란 그리스 도의 유월을 함께 축하하는 것입니다. 성체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제물」과「현존」 이기 때문이야말로 회식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받아서 먹어라」라는 초대는 「만남・일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②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체를 배령하고 만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맺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인 성체를 통해 모든 신자를 「교회」라는 하나의 몸으로 결부시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또 교회란 예수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토10,16~17)교회는 단지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모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그 몸속에서 통합되는 것입니다.(「카톨릭 교회의 카테키즘」N789)・

③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사랑의 유대와 일치

또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각자가 그리스도와 맺어진 것에 의해 그리스도인 서로의 일치가 생깁니다. (「카톨릭교회의 카테키즘」 N1396)・성체에 의한 만남은 이미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실현된 교회와의 합체를 새로이 하고 굳건히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사랑의 유대와 일치를 깊게 합니다. 2003년은 「신앙공동체를 체험하자」를 테마로 했습니다만, 다시한번 성체에서의 고찰로 「신앙공동체」의 이해를 보충해 주십시오.

④만남의 교회・동선교사목의 영성

성체에 의한 만남은 단순한 「은혜의 분배」인것은 아닙니다. 받은 은혜는 그것에 보답하며 행하는 사랑과 봉사에 의해 완성 되어 집니다. 그것은 개인이 따로 따로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행위로서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일지라도 수족은 다양하기에 공동체의 조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건설에 있어서 각 각 수족과 직무의 다름이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이며 그 풍부한 자원에 어울리고 또 임무의 필요에 따라 교회의 이익을 위해 여러가지 훌륭한 능력을 나눠받게 됩니다」 (교회 헌장 7)・ 성체에 의한 만남의 고찰은 우리를 「만남에의 교회」로 향하게 합니다. 공동선교사목에 있어서 사제, 수도자, 신자가 각자의 소명에 따라 함께 교회의 사도직을 다하는 것입니다.이것이 공동선교 사목의 정신입니다.

7.그리스도의 면전 앞에서 성모마리아와 함께 기도합시다.

①성체조배

성체와의 만남을 가지는 것, 그것은 「기도하는」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체는 이 세상에 있어서 「기도의 현존」이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동시에 신전으로 세우고 「하느님의 아들과의 만남에 초대해 주셨다」(1고린토1,9)입니다. 미사이외의 성체조배, 특히 성체방문은 주의 현존을 영접하는 소중한 신앙 행위입니다. (참조 「미사이외 성체배령, 성체조배」)・ 신자는 방문하러 간다기보다 주님이 지상의 공동체에 현존 해 주시는 것을 끊인없이 새로이 「맞이하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중심인 성체는「도하는」것이「받는」것이며 만남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면전앞에서 기도할 때 교회 자신과 세계의 필요를 알리는 것은 주가 그것을 모르시는것이 아니다 교회자신이 마음을 열어 주의 음성에 귀를 귀울리기 위함입니다. 주는 항상 필요르 충만키 위해 거기에 계십니다. 주의 현존은 전능의 하느님이 이 세상에로 개입해 오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②「성체안에 살아 계시는 여성・마리아」

「성체안에 살아 계시는 여성」(「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N53) 이며 성자를 잉태하신 마리아가 성체에 있어서 우리와 부활한 예수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동경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면전 앞에서 마리아와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마음의 굶주림과 갈증을 가장 깊이 넘치도록 만족 시켜주시기를.

③「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

마지막으로 올해 미사 중에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를 계속합시다. 작년 주교좌 성당에 헌당한「도시의 성모 소성당」은 평화를 기도하는 경당으로서 헌당되었습니다. 교황은 평화가 가능하면 평화는 또 의무인 것입니다.」 라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미사 중에 「주의기도」에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우리들이 대립과 불화의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평화의 주인 그리스도에게 기르쳐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미사야말로 평화를 위해 드리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인류 가족이 그리스도와 맺어져「모두가 하나가 되어」「그리스도와의 가까운 만남에 초대되어」 예외없이 모든 사람과 연대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2005년 1월 1일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 축일


(주1)
에우카리스티어(성체)의 호칭에 대해
초대교회에서「주의날」에 최후의 만찬의 기념을 행하는 집회가 「에우카리스티어」(그 리스어의 eucharistia감사 )라고 불리었습니다. 이 「에우카리스티어」는 종종 일본어 「성체」로 번역됩니다.「성체」는「감사의 제의」라고도 합니다.「감사한다」란「기념 한다」「성찬에 참여한다」「새로운 계약」「봉헌」「예배」등의 개념으로 폭 넓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에우카리스티어」란 말에 들어 있는「성체」와「감사」라 는 두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상기 시키기 위해 본 교서에서는 에우카리스티어(성체)라고 표기합니다.